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해찬/비판 및 논란 (문단 편집) === 3.1절 골프 로비 의혹 파문 === > '''이해찬 총리가 총리직을 물러나야 되는 9가지 이유''' > > 첫째, 공직자윤리강령 위반. > 둘째, 독립유공자 모독죄. > 셋째, 국정문란죄. > 넷째, 특혜조장죄. > 다섯째, 양극화 조장죄. > 여섯째, '반노블리스 오블리제' 조장죄. > 일곱째, 허위사실유포죄. > 여덟째, 국무총리 직무유기죄. > 아홉째, 미풍양속 악용죄. > ----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700|미디어오늘, 2006년 3월 9일]] >`3.1절, 나아가 철도파업 첫날 골프한게 올바른 처신이냐'에서 시작한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은 흡사 `[[게이트]]'라고도 불릴 만큼 많은 의혹을 낳고 있다. 동반 라운딩을 한 인사들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이들 가운데 일부 인사들과 이 총리의 부적절한 관계, 나아가 로비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추측과 의혹이 계속 가지를 치고 있는 형국이다. 총리실의 계속된 침묵과 참석자들 사이의 엇갈린 해명 속에 `누가 골프모임을 주선했느냐', `골프모임의 목적은 무엇인가', `골프비용은 누가 부담했느냐' 등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 ----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6995.html#csidxdcc9cbcf81582fb8bcc39605c2e5527|한겨레, 2006년 3월 7일 ]] 2006년 3.1절에 골프를 쳐서 또다시 파문이 일었다. 3.1절에 골프를 친 사실 자체도 큰 문제였지만, 당시 철도파업으로 비상사태인 상황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자리를 비운 것이어서 더욱 문제가 되었다. 이해찬 총리는 그 전날에도 국회에서 브로커 윤상림과의 골프문제로 다시 야당과 설전을 벌였다. 게다가 3.1절에 같이 골프를 친 사람들간에 [[영남제분]] 비리 의혹, 내기골프 파문 등이 잇달아 불거져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3.1절 이해찬 총리가 함께 골프를 쳤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부적절한 비리 인사들로, 같이 골프를 쳤던 사람들은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 [[강병중]] [[넥센타이어]] 회장[* 참고로 이 사람.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 당시에도 배석해있었다.], 신정택 세운철강 대표, [[이기우(1955)|이기우]] [[대한민국 교육부]] [[차관]], 정순택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前 부산광역시 교육감. 교육감 자리에서 퇴직한 이후에는 청와대 수석으로 입각한 상황이었다.]등이었는데, 이 사람들과 영남제분이 관련된 여러 의혹들이 속속 제기되었다.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은 3.1절 전날인 2월 28일, 밀가루 가격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로부터 법정 최고액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으며, 그전에는 주가조적으로 선고받은 바 있다. 또 류원기 회장은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의 주범 윤길자의 남편이며, 본인 또한 해당 사건의 공범으로 국민적인 공분을 사던 인물이다. 교직원공제회가 영남제분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주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영남제분이 자사주를 처분하면서 70억원에 가까운 시세 차익을 올린 사실이 밝혀져 영남제분과 교직원공제회 사이에 검은 거래가 있지 않았느냐라는 의혹이 확산되었다. 3.1절 같이 골프를 쳤던 이기우 차관이 과거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류원기 회장이 이해찬 총리에게 밀가루 가격담합 혐의 선처를 호소하는 직접 로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또 류원기 회장과 윤길자의 장남이 2004년 4.15 총선 직전 이해찬 총리에게 400만원의 정치자금을 기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나라당은 영남제분 관련 4대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또 당시 이해찬 총리와 함께 골프를 쳤던 사람들 중 부산 지역 유력 인사인 K씨를 비롯해 건설회사와 철강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P씨와 S씨 등 3명은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및 노무현 정권 출범 후 불법 정치자금을 모아 노무현 후보측에 불법 대선자금을 지원한 혐의를 가지고 있다. K씨, P씨, S씨 세 사람은 2002년 12월초 4000만 원씩 갹출해 모은 2억 원을 김정길(金正吉) 당시 민주당 중앙위원에게 노무현 후보 선거자금으로 전달했다. 이들은 얼마후 또다시 2500만원을 추가로 모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전달했다. K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2003년 1월에는 최도술에게 3000만원을 건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었다. 또 P씨는 노무현 후보 측 말고도 2002년 말 한나라당 재정국 관계자에게 대선 자금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이해찬 총리가 이렇게 대선자금과 연루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모아 골프를 친 것은 '''향후 자신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대선자금 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었다.''' 이해찬 총리가 과거에도 기업인들로부터 접대성 공짜 골프를 즐겼다는 사실과 주식거래 위반으로 처벌받은 비리 기업인들과도 무분별하게 어울려 골프를 쳐온 사실 등이 새롭게 알려지며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는 총리의 업무와 관련 있는 일이며, 총리가 비리 기업인들과 어울린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제까지 단순히 공휴일에 골프를 쳤다는 사실만으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총리는 사생활도 없냐면서 역정을 내던 이해찬 총리 측의 주장도 무색해지게 되었다. 게다가 3.1절 이해찬 총리가 일행들과 백만원대의 고액 내기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후폭풍이 더욱 거세어 졌다. 이 총리 측은 처음에 이를 부인했으나 결국 거짓말로 들통났고 이에 여론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총리 사퇴 여론이 전방위에서 일었다. 3.1절 골프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어 지며 여론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으나 이해찬은 비등하는 사퇴 여론에도 불구하고 14일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총리실은 "장모님 문병을 하는 길에 우연히 들렀다가 아는 사람들과 골프를 치게 되었다."고 변명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의혹이 최초로 점화되었던 시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이었던 시점으로,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를 대표하여 골프 로비 미수 의혹을 부인했다. 주요 언론들이 이 골프 파문을 `골프로비 미수사건'이라고 보도하자, 3월 7일 [[문재인]] 민정수석은 "`골프로비 미수사건'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부산 상공인들이 지역 경제의 고충을 전하는 자리로 그 성격을 이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날 이백만 홍보수석도 "일부 언론이 '로비 미수'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악의적인 표현이다. 로비의 실체가 없다. 대통령은 3.1절, 철도파업이 있는 날 골프친 것에 대해서는 난감해 했지만,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는 100%작문으로 사실이 아니다. 이 총리 거취문제 역시 대통령께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왜 이 총리 사임을 기정사실화하냐"라고 강경한 어조로 발언했다. 이해찬 총리의 경질을 기정사실화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문재인 민정수석은 "대통령이 이총리를 경질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닌데도 이총리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사퇴를 압박하는 일부언론의 행태는 분노스럽다"며 언론을 강력히 비난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민정수석의 이같은 발언이 있자 대통령의 인사 권한을 침해한 월권 발언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등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문재인 민정수석은 3월 10일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파문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 총리의 사과가 있은 다음날인 3월 6일 이미 정동영, 김근태, 우상호 의원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이 총리가 사퇴할 것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사태를 조기 진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인 3월 7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 총리의 사퇴론에 선을 그으면서 사태는 확전되었고, 이에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청와대가 사태를 키우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 총리의 사퇴가 불가피한 상황인데, 청와대가 이를 두둔하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당 지지율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는 당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 중이었기에 즉시 총리 경질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에서 돌아온 3월 14일, 이해찬은 오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할 지, 한 번 더 기회를 줄 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가운데, 문재인 민정수석은 이해찬에 관한 민정수석실의 감찰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이어 오후 3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김한길, 김근태 등 당내 중진들의 뜻을 모아 청와대를 직접 방문하여 노무현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 의장은 여당 수뇌부의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2시간 여에 걸친 면담이 끝난 직후인 오후 5시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의 의견을 수용하여 이해찬 총리의 사의를 수용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노 대통령이 민심을 정확하고 파악하고 있었다”고 전하여, 당청 면담 이전에 이미 노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의 거취를 결정했음을 시사했다. 퇴임식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부정한 행위를 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당시 공영방송의 뉴스는 이해찬 총리의 퇴임을 알리는 보도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최초의 운동권 출신 총리로서 이 정부 실세중의 실세였다. 운동권 출신답게 누구보다도 도덕적인 면을 강조했고, 보수야당에게도 강경하게 맞서 왔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도덕성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결국 국무총리로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논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